이 말은 널리 통합니다. 그리고 이해가 갑니다. 호르몬제라는 이름 자체가 부담스럽게 들리고, 영양제는 음식에 가까운 느낌이니까요.
다만 안전성을 비교하려면 먼저 성립해야 하는 조건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조건들을 하나씩 짚어 보겠습니다.
먼저 분명히 해둘 것이 있습니다. 이 글은 호르몬 요법을 권하는 글도, 영양제를 만류하는 글도 아닙니다. 비교라는 방식 자체가 성립하는지를 보는 글입니다.
첫 번째 조건 — 목적이 같아야 합니다
안전성 비교는 같은 일을 하는 두 가지를 놓고 할 때 성립합니다.
호르몬 요법은 질병의 치료·예방을 목적으로 허가된 의약품입니다. 앞선 글에서 다룬 분류 체계상 그렇습니다.
반면 건강기능식품은 질병의 치료·예방 효과를 표시할 수 없습니다. 법률상 그런 기능을 가진 원료는 애초에 인정 대상이 아닙니다.
즉 두 가지는 애초에 다른 범주에 속하고, 다른 것을 하도록 허가받았습니다.
“A보다 B가 안전하다”는 말은 A와 B가 같은 문제를 해결한다는 전제 위에서만 의미가 있습니다. 그 전제가 성립하지 않으면, 비교가 아니라 다른 두 물건을 나란히 놓은 것에 가깝습니다.
두 번째 조건 — 심사 강도를 반대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여기가 제가 생각을 고친 부분입니다.
저는 막연히 ‘의약품은 강한 것, 영양제는 순한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범주의 차이는 강도가 아니라 심사받은 내용의 차이입니다.
의약품은 효과와 안전성을 평가받아 허가됩니다. 그 과정에서 이상반응이 체계적으로 수집되고 문서화됩니다. 부작용 목록이 길다는 것은 그만큼 조사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건강기능식품은 다른 절차를 거칩니다. 앞선 글에서 다뤘듯 원료의 기능성과 안전성을 심사하지만, 의약품과 같은 규모의 임상시험 체계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정보가 적은 것을 위험이 적은 것으로 읽으면 방향이 뒤집힙니다. 이 시리즈에서 반복해 나온 구분입니다 — 자료가 없는 것과 문제가 없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
‘천연이라 안전하다’는 인식이 실제로 어떻게 어긋났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국내에 있습니다.
2015년, 갱년기 관련 원료로 널리 쓰이던 백수오 제품에서 이엽우피소라는 다른 식물이 검출됐습니다.
식약처가 유통 제품을 조사한 결과입니다[1].
- 백수오 사용 신고 제품 721개 중 유통 중인 207개를 검사
- 건강기능식품 1개, 일반식품 39개 등 총 40개 제품에서 이엽우피소 검출
- 혼입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157개 제품 중 58개 건강기능식품은 자율회수 조치
- 농산물 백수오 31건 중 19건에서 검출되어 폐기 처분
- 백수오 함유 의약품 5개 중 4개에서도 검출되어 회수[1]
마지막 항목이 중요합니다. 의약품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원료 관리 문제는 범주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이 사례가 말해 주는 것은 ‘영양제가 위험하다’가 아닙니다. 원료가 무엇인지, 어떻게 관리되는지가 안전성의 실질적 변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변수는 제품 이름이나 범주만 보고는 알 수 없습니다.
세 번째 조건 — 시작 시점을 빼놓지 않아야 합니다
호르몬 요법 쪽의 근거도 정확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2002년 WHI 연구 발표 이후 한동안 부정적 권고가 주류였습니다. 이후 세부 분석 결과들이 나오면서 권고 지침이 학회별로 조정되어 왔습니다[3].
대한폐경학회 임상지침 개정판은 ‘타이밍 가설’ 또는 ‘치료 기회의 시기’를 강조합니다. 폐경호르몬요법이 심혈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시작 시기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2].
즉 호르몬 요법의 위험과 이득은 하나의 고정된 숫자가 아닙니다. 언제 시작하는지, 자궁이 있는지, 어떤 조합인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같은 지침은 자궁이 있는 여성에게는 자궁내막암 예방을 위해 병합요법을 권고하는 등, 조건별로 다른 권고를 제시합니다[2].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하나의 값으로 놓고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물어야 하나
‘어느 쪽이 안전한가’는 답이 나오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대신 이렇게 나눠 물으시면 답이 나옵니다.
- 내 증상이 어느 정도인가 — 일상에 지장이 있는 수준인지, 견딜 만한지에 따라 선택지가 달라집니다.
- 나에게 해당하는 조건이 있는가 — 자궁 유무, 유방암·혈전 병력, 심혈관 위험요인, 복용 중인 약. 이것들이 판단을 바꿉니다.
- 폐경 후 몇 년째인가 — 위에서 본 시작 시점 이야기입니다.
- 이 제품에 인정된 기능성이 무엇인가 — 앞선 글에서 다뤘듯 대두 이소플라본의 국내 인정 기능성은 갱년기가 아니라 뼈·관절 건강입니다. 사려는 이유와 인정 내용이 맞는지 대조해 보세요.
- 원료와 제조 관리가 확인되는가 — 백수오 사례가 남긴 질문입니다.
이 다섯 가지는 어느 쪽을 택하든 물어야 하는 것들입니다.
함께 확인하실 점
- 영양제도 상호작용이 있습니다 — 앞선 글에서 다뤘듯 이소플라본은 에스트로겐 유사 작용을 하며, 갑상선 기능과의 관련도 지적됩니다.
- 호르몬 민감성 질환 병력이 있으시면 영양제 쪽도 상의가 필요합니다. ‘천연’이라는 이유로 예외가 되지 않습니다.
- 약을 복용 중이시라면 양쪽 다 알리세요.
- 증상이 심하시다면 참지 마세요 — 선택지를 비교하느라 진료를 미루는 것이 가장 아쉬운 경우입니다.
마치며
이 말이 퍼진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호르몬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 2002년 이후 한동안 이어졌던 부정적 보도, 그리고 ‘천연은 순하다’는 오래된 인식이 겹쳤습니다.
다만 정리해 보니 비교 자체가 성립하려면 세 가지가 먼저 맞아야 했습니다. 목적이 같아야 하고, 심사 강도를 반대로 읽지 말아야 하고,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값을 하나로 뭉뚱그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백수오 사례는 ‘천연’이 안전의 보증이 아니라는 것을 국내에서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일이었습니다. 의약품 5개 중 4개에서도 검출됐다는 것은, 안전이 범주가 아니라 관리의 문제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증상 때문에 고민하고 계신다면, 어느 쪽이 안전한지를 혼자 저울질하시기보다 위 다섯 가지를 정리해 진료 때 여쭤보시는 편이 훨씬 빠릅니다.
용어 풀이
- 폐경호르몬요법 — 폐경 전후 증상 관리를 위해 호르몬을 보충하는 치료입니다.
- WHI 연구 — 2002년 결과가 발표되며 호르몬 요법 권고에 큰 영향을 준 대규모 연구입니다.
- 타이밍 가설 — 호르몬 요법의 이득과 위험이 시작 시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 이엽우피소 — 백수오와 겉모습이 비슷한 다른 식물로, 2015년 혼입 사태의 원인이 된 원료입니다.
- 자율회수 — 문제 가능성이 확인됐을 때 영업자가 스스로 제품을 거둬들이는 조치입니다.
한눈에 정리
- 안전성 비교는 목적이 같은 두 가지를 놓을 때 성립 —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은 허가받은 목적이 다름
- 건강기능식품은 질병 치료·예방 효과를 표시할 수 없음
- 범주 차이는 강도가 아니라 심사받은 내용의 차이 — 정보가 적은 것을 위험이 적은 것으로 읽으면 방향이 뒤집힘
- 2015년 백수오 사태: 유통 207개 중 40개 제품에서 이엽우피소 검출, 58개 건강기능식품 자율회수
- 농산물 31건 중 19건, 그리고 의약품 5개 중 4개에서도 검출 — 범주를 가리지 않은 문제
- 대한폐경학회 지침은 ‘타이밍 가설’을 강조 — 심혈관계 영향이 시작 시기에 따라 다를 수 있음
-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값을 하나의 숫자로 비교할 수 없음
- 물어야 할 것은 ‘어느 쪽이 안전한가’가 아니라 증상·조건·시점·인정 기능성·원료 관리 다섯 가지
※ 본 글은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의학적 진단이나 처방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호르몬 요법을 권하거나 만류하는 내용이 아니며, 그 판단은 개인의 병력과 조건에 따라 달라지므로 반드시 진료를 통해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건강기능식품도 상호작용이 있을 수 있으므로, 호르몬 민감성 질환 병력이 있으시거나 약을 복용 중이시라면 섭취 전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참고자료
- 식품의약품안전처, 「이엽우피소 혼입 확인된 가짜 백수오 제품 전량 회수」(2015년 조사 결과), 식품안전나라, https://foodsafetykorea.go.kr/hazard/foodInjryInfo/searchFoodInjryInfoDetail.do?start_idx=1&show_cnt=5&lifecyc_meta_cd=ALL&food_injry_info_seq=422
- 메디칼업저버, 「폐경호르몬요법, 젊고 건강한 시기에 시작해야 ‘이득’」 — 대한폐경학회 임상지침 개정판의 타이밍 가설 및 조건별 권고, https://www.mo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1451
- 조정진, 「WHI 연구와 호르몬 대체요법의 최근 권고지침」, Korean Journal of Family Medicine,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88854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