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로 건강 제품, 표시할 수 있는 말이 어디서 멈추나?

크랜베리 제품 이야기를 여러 번 다뤘습니다. 이번에는 성분이 아니라 표시입니다.

연구는 요로감염 예방을 말하는데, 제품 라벨에는 그 말이 없습니다. 요로 건강 표시 범위가 어디까지이고 어디부터 금지인지를 법령 조문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인정 문구가 멈추는 자리

크랜베리추출물의 인정 기능성 문구는 이렇게 알려져 있습니다[1].

소변이 배출되는 통로에 유해균이 정착하는 것을 막아, 요로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음

이 문장을 천천히 읽어 보시면 구조가 보입니다.

앞부분은 기전을 설명합니다 — 유해균이 정착하는 것을 막는다는 것. 앞선 글에서 다룬 부착 억제 작용입니다.

뒷부분은 ‘요로건강’에서 멈춥니다.

‘감염’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방광염도, 예방도 없습니다.

문장이 감염 바로 앞까지 갔다가 멈춘 셈입니다. 유해균이 달라붙지 못한다는 것까지는 말하고, 그래서 감염이 예방된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법이 그 지점을 나눠 놓았습니다.

 

법이 금지하는 네 가지

근거 조문은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제8조입니다.

제1항 제1호는 질병의 예방·치료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인식할 우려가 있는 표시 또는 광고를 금지합니다. 이 항은 2021년 8월 17일 개정된 조문입니다[2].

그리고 시행령 별표1이 그 ‘인식할 우려’를 네 가지로 구체화합니다[3].

  • 가) 질병 또는 질병군의 발생을 예방한다는 내용
  • 나) 질병 또는 질병군에 치료 효과가 있다는 내용
  • 다) 질병의 특징적인 징후 또는 증상에 예방·치료 효과가 있다는 내용
  • 라) 질병 및 그 징후·증상과 관련된 제품명, 학술자료, 사진 등을 활용하여 질병과의 연관성을 암시하는 표시·광고

요로감염은 질병입니다. 그러니 가)와 나)에서 이미 걸립니다.

그런데 다)와 라)가 더 넓습니다.

다) 때문에 배뇨통이나 잔뇨감 같은 증상을 겨냥한 표현도 제한됩니다. 질병명을 피해 증상으로 우회하는 방법이 막혀 있는 셈입니다.

 

연구 인용도 걸립니다

여기가 제가 몰랐던 부분입니다.

라)를 다시 보시겠습니다. 질병과 관련된 학술자료를 활용하여 질병과의 연관성을 암시하는 표시·광고도 금지 대상입니다[3].

즉 연구 결과를 인용하는 것 자체가 규제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앞선 글에서 정리했듯 2023년 코크란 리뷰는 크랜베리 제품이 증상이 있고 배양으로 확인된 요로감염 위험을 감소시켰다고 보고했습니다. 재발성 요로감염 여성에서 상대위험도 0.74였습니다.

이 연구는 실재하고 결과도 그렇게 나왔습니다. 그런데 제품 광고에 그 논문을 인용해 요로감염과의 연관성을 암시하면, 라)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연구가 사실이라는 것과 그것을 제품 광고에 쓸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뜻입니다.

이 구분이 왜 필요한지는 이해가 갑니다. 논문은 특정 조건과 집단에서 나온 결과이고, 광고에 인용되면 그 조건이 떨어져 나가니까요. 앞선 글에서 정리했듯 코크란 결과도 집단에 따라 갈렸습니다 — 시설 거주 고령자, 신경인성 방광 성인, 임신부에서는 감소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지표성분이 다릅니다

실용적으로 중요한 차이가 하나 더 있습니다.

국제 연구에서 크랜베리를 논할 때 기준이 되는 성분은 PAC(프로안토시아니딘)입니다. 앞선 글에서 PAC 함량 표기의 측정 문제를 다뤘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국내에서 인정받은 크랜베리추출물 원료의 지표성분은 안토시아노사이드로 표시되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한 자료에 따르면 크랜베리추출물 500mg에 안토시아노사이드 1.25mg이 들어 있는 형태입니다[1].

국제 연구가 보는 성분과 국내 표시 기준 성분이 다릅니다.

그래서 “코크란 연구에서 36mg PAC”라는 숫자를 국내 제품 라벨에서 찾으려 하면 헤매게 됩니다. 애초에 표시 기준이 다른 성분이기 때문입니다.

코크란 리뷰도 이 상황을 지적합니다. 현재 어떤 PAC를 얼마나 써야 하는지에 대한 확립된 요법이 없으며, 크랜베리 제품에 대한 보건 당국의 공식적인 규정도 없다는 것입니다[4].

확인 순서

  1. 기능정보란에서 문장 전체를 읽습니다. ‘요로건강에 도움’이라는 결론만 떼어 보면 넓게 읽히는데, 앞에 기전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2. ‘감염’, ‘방광염’, ‘예방’이 있는지 봅니다. 인정 문구에는 없습니다. 광고에 있다면 인정된 내용이 아닙니다.
  3. 논문 인용이 질병과 연결되어 있는지 봅니다. 학술자료로 질병 연관성을 암시하는 것도 규제 대상입니다.
  4. 지표성분과 함량을 확인합니다. 국내 표시는 PAC가 아닐 수 있습니다.
  5. 원료명으로 조회합니다. 인정 문구와 일일섭취량 원문은 식품안전나라에서 확인하실 수 있고, 기준은 개정됩니다[5].

 

증상이 있으실 때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표시 규제가 이렇게 짜여 있다는 것 자체가 신호입니다. 요로감염은 질병이고, 질병은 건강기능식품이 다룰 수 있는 범주가 아니라고 법이 정해 둔 것이니까요.

앞선 글에서 정리했듯 배뇨통, 혈뇨, 발열, 옆구리 통증이 있으시면 진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예방과 치료는 다른 이야기이고, 이미 생긴 감염에는 원인균을 확인하고 치료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마치며

이 주제를 정리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정 문구가 멈추는 자리였습니다.

유해균이 정착하지 못하게 한다는 데까지 말하고, 그래서 감염이 예방된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기전은 설명하되 결과는 말하지 않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학술자료 인용까지 규제 대상이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습니다. 코크란 리뷰가 실재하고 결과도 그렇게 나왔지만, 그것을 제품 광고에 붙여 질병 연관성을 암시하면 다른 문제가 됩니다.

연구를 읽는 자리와 제품을 고르는 자리가 다르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블로그에서 연구를 소개하면서 늘 조건과 집단을 함께 적으려 하는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조건이 떨어져 나간 결론은 다른 주장이 되니까요.

용어 풀이

  • 기능정보란 — 제품 뒷면에서 인정된 기능성 문구가 적혀 있는 칸입니다.
  • 지표성분 — 원료의 함량을 재고 표시하는 기준이 되는 성분입니다.
  • 프로안토시아니딘(PAC) — 크랜베리의 부착 억제 작용과 관련해 국제 연구에서 기준으로 삼는 성분입니다.
  • 안토시아노사이드 — 안토시아닌 계열 성분으로, 국내 크랜베리추출물 표시에서 확인되는 지표성분입니다.
  • 시행령 별표 — 법률의 위임을 받아 세부 기준을 표 형태로 정한 부분입니다.
  • 질병군 — 비슷한 성격의 질병들을 묶어 이르는 말입니다.

한눈에 정리

  • 인정 문구는 “소변이 배출되는 통로에 유해균이 정착하는 것을 막아, 요로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음”
  • ‘감염’·’방광염’·’예방’이라는 단어가 없음 — 기전까지만 말하고 결과에서 멈춤
  • 근거는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제8조 제1항 제1호(2021. 8. 17. 개정)
  • 시행령 별표1이 네 가지로 구체화 — 질병 발생 예방, 치료 효과, 징후·증상, 그리고 학술자료를 활용한 연관성 암시
  • 그래서 증상으로 우회하는 표현도, 논문을 인용해 질병과 연결하는 것도 규제 대상
  • 코크란 2023 리뷰는 요로감염 위험 감소를 보고했지만, 연구가 사실인 것과 광고에 쓸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
  • 국제 연구의 기준 성분은 PAC인데, 국내 표시 지표성분은 안토시아노사이드로 확인됨
  • 코크란도 PAC에 대한 확립된 요법이나 보건당국의 공식 규정이 없다고 지적

※ 본 글은 표시·광고 제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드리기 위한 정보 제공용이며, 의학적 진단이나 처방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특정 제품을 평가하거나 권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법령과 인정 기준은 개정될 수 있으므로 원문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배뇨통, 혈뇨, 발열, 옆구리 통증 등의 증상이 있으시면 건강기능식품에 의존하지 마시고 진료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항응고제를 복용 중이시거나 신장 결석 병력이 있으신 분은 섭취 전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참고자료

  1. 필라이즈, 「크랜베리추출물」 성분 정보 — 인정 기능성 문구 및 지표성분(안토시아노사이드) 표시 내용, https://www.pillyze.com/nutrients/420/크랜베리추출물
  2.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제8조(부당한 표시 또는 광고행위의 금지), 국가법령정보센터 — 제1항 각 호(2021. 8. 17. 개정), https://www.law.go.kr/LSW/LsiJoLinkP.do?docType=JO&lsNm=%EC%8B%9D%ED%92%88+%EB%93%B1%EC%9D%98+%ED%91%9C%EC%8B%9C%E3%86%8D%EA%B4%91%EA%B3%A0%EC%97%90+%EA%B4%80%ED%95%9C+%EB%B2%95%EB%A5%A0&languageType=KO&paras=1&joNo=001600000
  3. 한국식품산업협회, 「식품등의 기능성 표시·광고 자율심의 관련규정」 — 법 제8조 및 시행령 [별표1]에 따른 금지 표현 가)~라), http://adf.kfia.or.kr/company/contents/notice/law.do?menuKey=359
  4. 코크란 한국어 요약, 「요로 감염 예방을 위한 크랜베리」 — PAC 요법 및 공식 규정 부재에 관한 서술, https://cochrane.org/ko/CD001321/RENAL_yoro-gamyeom-yebangeul-wihan-keuraenberi
  5. 식품안전나라 (기능성 원료 및 인정 문구 조회), https://www.foodsafetykore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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