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트로겐을 생식 호르몬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면역 쪽 자료를 보니 면역 조절자로 기술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왜 그런 역할을 하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 여성의 시간 축
먼저 숫자 두 개를 놓고 시작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폐경 나이는 49.7세입니다[1]. 그리고 한국 여성의 기대수명은 평균 85.7세입니다[1].
두 숫자를 빼면 약 36년입니다.
인생의 40% 이상을 폐경 이후로 보내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이 시기의 몸 변화는 한때 지나가는 국면이 아니라 이후의 기본 조건에 가깝습니다.
대한폐경학회 조사에서 폐경 여성 10명 중 8명(80.3%)이 폐경 증상을 경험한다고 답했습니다[2]. 드문 일이 아닙니다.
에스트로겐이 면역조절자인 이유
여기가 제가 새로 알게 된 부분입니다.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은 시기에 면역 세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3].
- 항체 생산을 담당하는 B세포의 활성도가 올라갑니다
- 항염증 반응을 유도하는 조절 T세포의 기능이 강화됩니다
두 방향이 함께 있다는 점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공격 쪽과 조절 쪽이 동시에 강화됩니다.
그리고 왜 이런 구조가 생겼는지에 대한 설명이 이렇습니다.
유전적으로 절반이 타인인 태아를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외부 병원균으로부터 모체를 보호해야 하는 임신의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진화한 결과[3]
태아는 절반이 남의 유전자입니다. 면역계 입장에서는 배척해야 할 대상인데, 배척하면 임신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임신 중에도 감염으로부터는 보호해야 합니다.
받아들이면서 지키는 일을 동시에 해내야 했고, 에스트로겐이 그 균형을 맡는 역할로 자리 잡았다는 설명입니다.
완충 지대가 무너질 때
그 균형을 맡던 호르몬이 줄어들면 어떻게 되느냐.
같은 자료의 표현입니다. 폐경 이후 에스트로겐 수치가 급감하면 이 완충 지대가 무너지면서 염증성 사이토카인이 급증하고 만성 염증 상태로 전이될 위험이 커집니다[3].
‘완충 지대’라는 표현이 정확합니다. 에스트로겐이 억누르고 있던 것이 아니라, 가운데를 잡아 주던 장치가 빠지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앞선 글에서 정리했듯 면역계는 방향이 둘입니다. 부족해도 문제, 과해도 문제입니다. 그리고 폐경 후 변화는 염증 쪽으로 기울면서 표적 반응은 약해지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면역을 올린다는 표현이 특히 조심스러워집니다. 이미 올라가 있는 쪽을 더 미는 이야기가 될 수 있으니까요.
다만 개인차가 큽니다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위 내용은 집단 수준의 경향이지 개인의 예측이 아닙니다.
폐경 나이 49.7세도 평균값입니다. 40대 초반에 겪으시는 분도, 50대 중반에 겪으시는 분도 계십니다.
증상도 마찬가지입니다. 80.3%가 증상을 경험한다는 것은 다섯 중 한 명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2].
그리고 폐경 증상은 시기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초기에는 안면홍조·야간발한 같은 증상이, 3~8년 뒤에는 비뇨생식기 증상이, 10년쯤 되면 만성질환 위험이 거론됩니다[2].
어느 단계에 계신지, 어떤 증상이 있으신지, 다른 질환이 있으신지에 따라 상황이 다릅니다. 이 글은 그 배경을 이해하는 데 쓰시고, 본인 상황은 진료에서 확인하시는 것이 맞겠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 왜 개인차가 큰지 궁금하신 분만 읽으셔도 됩니다. 면역 변화의 정도에는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합니다. 폐경 시점의 나이, 자연 폐경인지 수술로 인한 것인지, 기존 자가면역질환 유무, 체성분, 복용 중인 약, 그리고 앞선 글들에서 다룬 영양 상태까지요. 그래서 같은 나이의 두 사람이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습니다. 평균값은 그 분포의 중심일 뿐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하나
방향이 정해지면 할 수 있는 것도 정해집니다.
예방접종 이력을 확인하세요. 앞선 글에서 정리했듯 표적 반응이 약해지는 쪽에 직접 작용하는 유일한 개입입니다. 연령대별 권고 접종이 있습니다.
자가면역질환이 있으시면 이 시기 변화를 전문의와 나누세요. 앞선 글에서 다뤘듯 국내 류마티스관절염 유병률은 여성이 남성의 약 3배이고 70세 이상에서 3.5%로 정점을 찍습니다. 관리되던 상태가 이 시기에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복되거나 잘 낫지 않는 감염이 있으면 확인하세요. 그 자체가 확인이 필요한 신호입니다.
뼈와 심혈관 쪽 검진 주기를 놓치지 마세요. 앞선 글에서 정리했듯 염증 신호는 뼈 대사와도 연결되고, 이 시기는 심혈관질환과 골다공증 위험이 함께 올라가는 구간과 겹칩니다[1].
그리고 호르몬 요법 여부는 진료에서 결정하실 일입니다. 관련 자료와 학회 정보는 대한폐경학회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4]. 이 글은 그것을 권하지도 만류하지도 않습니다. 대한폐경학회 조사에서 증상을 경험한 여성 중 호르몬 치료를 받는 비율이 24.6%로 나타났는데[2], 그 격차의 이유는 개인마다 다를 것입니다. 판단의 근거는 개인의 병력과 조건입니다.
마치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에스트로겐이 왜 면역조절자가 됐는가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절반이 남인 태아를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감염으로부터는 지켜야 하는 일. 그 두 가지를 함께 해내려면 면역계를 한 방향으로 밀 수 없고, 가운데를 잡는 장치가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폐경 후 변화는 무언가가 나빠지는 것이라기보다 그 장치가 빠지는 것에 가깝습니다. 문헌의 ‘완충 지대’라는 표현이 그 성격을 잘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여성의 평균 폐경 나이 49.7세와 기대수명 85.7세를 놓고 보면, 이건 36년치의 조건입니다. 그만큼 이해해 둘 값어치가 있겠습니다.
다만 평균은 평균일 뿐이고, 개인차가 큰 영역입니다. 배경으로 알아 두시되 본인 상황은 진료에서 확인하시는 편이 맞겠습니다.
용어 풀이
- 에스트로겐 — 여성호르몬의 하나로, 생식뿐 아니라 면역·뼈·혈관 등 여러 곳에 작용합니다.
- 면역조절자 — 면역 반응의 세기와 방향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물질입니다.
- B세포 — 항체를 만드는 면역세포입니다.
- 조절 T세포 — 면역 반응이 과해지지 않도록 억제하는 면역세포입니다.
- 사이토카인 — 면역세포끼리 주고받는 신호 물질입니다.
- 만성 염증 — 낮은 수준의 염증이 오래 지속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한눈에 정리
- 한국 여성 평균 폐경 나이 7세, 기대수명 85.7세 — 약 36년을 폐경 이후로 보냄
- 대한폐경학회 조사에서 폐경 여성의 80.3%가 증상을 경험
- 에스트로겐은 B세포 활성도를 높이고 조절 T세포 기능을 강화 — 공격과 조절 양쪽에 작용
- 이 구조는 절반이 타인인 태아를 받아들이면서 감염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임신의 과업에서 비롯된 것으로 설명됨
- 폐경 후 에스트로겐이 급감하면 완충 지대가 무너지며 염증성 사이토카인이 증가하고 만성 염증으로 이어질 위험
- 집단 경향이지 개인 예측이 아님 — 폐경 시점, 자연·수술 여부, 기존 질환 등에 따라 크게 다름
- 폐경 증상은 초기·중기·말기로 양상이 달라짐
- 호르몬 치료를 받는 비율은 6%로 조사됨
※ 본 글은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의학적 진단이나 처방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호르몬 요법을 권하거나 만류하는 내용이 아니며, 그 판단은 개인의 병력과 조건에 따라 달라지므로 진료를 통해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의 수치는 집단 평균이며 개인의 상태를 예측하지 않습니다. 자가면역질환이 있으시거나 면역억제제를 복용 중이시라면 면역 관련 제품 섭취 전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담하시고, 반복되거나 잘 낫지 않는 감염이 있으시면 의료기관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참고자료
- 고려대학교의료원, 「질병·노화 막는 여성호르몬, 폐경은 결핍」 — 대한폐경학회 회장 인터뷰, 한국 여성 평균 폐경 나이 및 기대수명, 폐경기와 만성질환 위험, https://www.kumc.or.kr/seasonPress/KUMM_vol5/kumm32.jsp
- 헬스경향, 「폐경기는 ‘제2의 인생’」 — 대한폐경학회 설문조사(증상 경험률 80.3%, 호르몬치료 비율 24.6%) 및 폐경 증상의 시기별 구분, https://www.k-health.com/news/articleView.html?idxno=67600
- 사이언스타임즈, 「여성의 ‘강력한 면역력’ 뒤에 숨겨진 유전적 이중성」 — 에스트로겐의 면역조절 기전, 임신과 관련된 진화적 배경, 폐경 후 완충 지대 붕괴, https://www.sciencetimes.co.kr/nscvrg/view/menu/252?nscvrgSn=261530
- 대한폐경학회, https://www.koreanmenopause.or.kr/